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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경은 누구인가?
일단정지
2011. 4. 18. 15:29
저항가수 방의경 돌아오다 | ||||
위클리경향 797호 | ||||
1970년대 활동하던 국내 첫 여성 싱어송라이터 ‘제2의 음악인생’ 준비
포크 싱어송라이터 방의경은 분명 한 시대의 개척자였다. 1970년대 초에 터져나온 그의 노래는 무너지고 쓰러지는 젊은 넋에 대한 진혼가였으며 ‘노래’가 막힌 세상의 진실된 ‘노래’였다. 그냥 흘러가는 유행가가 아니라 불꽃 같은 생명나무를 피워낸 그의 노래는 대부분 방송 금지의 멍에를 썼다. 그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죽어가는 나무가 시멘트를 뚫고 생명의 기운을 뻗어내듯 맑은 생명의 수액을 뿜어 올렸다. 방의경은 1970년대초 김민기와 함께 젊은이 사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항가수였다. 그는 지난 18일 모교인 이화여대 김영의홀에서 귀국 콘서트를 펼친 데 이어 연내 새 앨범도 발매할 계획이다. 2장의 CD로 내는 앨범에는 그가 발표한 유일한 독집 음반인 ‘방의경 내 노래 모음’과 최근 만든 새 노래들이 담긴다. 36년 만에 빛을 본 ‘방의경 내 노래 모음’은 모두 방의경이 작사·작곡한 노래들로, 1곡(‘친구야’)만 서유석이 노래했을 뿐이다. 이 앨범은 LP시장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희귀 앨범이다. 음반 수집가들 사이에서도 앨범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자랑이 될 정도다. 기념비적인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앨범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하지만 운동권에서 불린다는 이유로 그의 노래는 판매 금지, 폐기 처분으로 점철됐다. 시중에 용케 흘러나온 음반도 수거돼 들을 수 없게 칼로 난도질당했다. 양희은이 불러 국민가요가 된 ‘아름다운 것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금지곡이다. 데모하다 죽은 학생들의 삶을 기린 ‘하양나비’는 김인순이 불러 히트했지만 금지곡으로 묶였다. 방의경의 대표곡인 ‘불나무’도 사전에 없는 말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금지곡의 굴레에 갇히고 말았다. 그는 1974년 TBC ‘5시의 다이얼 DJ’ 등 젊은이들이 즐겨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활동하기도 했다. 많은 상처를 안고 살던 방의경은 1970년대 중반 홀연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LP ‘방의경 노래 모음’ 수백만 원 호가 방의경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서울 구기동에 있는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방의경은 수수께끼처럼 베일에 싸여 있던 그의 노래를 둘러싼 숨은 사연과 살아온 세월에 대해 털어놨다. 방의경의 노래 ‘불나무’는 숨을 멎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포크 노래다. 산들바람처럼 아름다운 노랫말도 노랫말이지만 맑게 울려퍼지는 깨끗하고 맑은 방의경의 노래는 중독성이 강하다. 노래 제목처럼 실제로 그의 노래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활활 타오르는 생명의 불이 되기도 했다. “암에 걸린 줄 알았던 한 여성 팬이 수술을 받기 전 이 노래를 부르고 들어가셨대요. 2003년 귀국했을 때 그 분이 찾아와 노래 덕분에 생명의 불씨를 지필 수 있었다고 얘기해주시더군요. 1970년대 당시에는 잔잔하게 불렀다고 생각하는데… 하늘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조상님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조상들이 피를 흘린 한 민족의 얼이 저를 통해 젊은 사람들에게 연결된 것 같아 자랑스럽습니다.” ‘방의경 내 노래 모음’에서 서유석이 ‘객원 가수’로 부르는 ‘친구야’는 방의경 작품 가운데 가장 직설적으로 저항의 메시지를 담았다. ‘작게 생긴 이 내 마음 설움도 많고/다 가려도 발목마다/사슬에 묶여…’ 등의 가사로 억압의 시대와 청년들의 고뇌를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방의경이 1집인 ‘내 노래 모음’에 수록한 ‘할미꽃’도 나라를 사랑하는 귀한 혼들이 무참하게 죽고, 귀한 마음들이 묻혀가는 게 안타까워 만든 노래였다.
그는 1집의 시련을 딛고 2집 녹음에 들어갔다. 자정을 넘어 통금이 되면 스튜디오 문을 걸어 잠그고 비밀리에 밤샘 녹음을 했다. 하지만 지인에게 남겨놓은 마스트 음원이 분실됐다. ‘하양나비’ ‘마른풀’ 등 30여 곡을 녹음했지만 끝내 이 음반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방의경은 그때 쓴 ‘마른풀’을 되살려내 새 앨범에 수록할 예정이다. 방의경은 “당시 나라를 사랑하는 귀한 혼들이 무참하게 죽었고, 귀한 마음들도 묻혔죠. 마른풀이 돼서 죽어간 것”이라면서 “죽어가는 혼들이 다시 피어나길 바라며 그들이 푸른 풀이 되어 오는 그날을 나는 기다리겠다는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 곡을 만들 때 “가슴이 벌렁벌렁 뛰면서 전깃줄에 감전되듯 저절로 가사와 곡이 한꺼번에 떠올랐다”며 “그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 악보를 쓸 줄도 모르면서 정신없이 악보를 그렸다”고 회상했다. “1973년에 만든 종이꽃은 이연실씨에게 노래를 시킨 곡입니다. 그 당시 젊음은 종이꽃과 같은 때였습니다. 바람이 불어 어린아이가 종이꽃을 손에 꽉 쥐고 있어요. 이 세상 넓은 들판이 쓸쓸해 보이니까 종이꽃이라고 심으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손을 잡고 소망하던 그 세상으로 가자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요즘 생각에는 각자 자기 길을 열심히 가면 소망하고 바라던 그 세상이 오는 것 같아요.” 방의경은 미국으로 이민한 후 새로운 삶을 살았다. 이화여대에서 장식미술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액세서리 디자인 회사를 경영하며 고생도 많이 했다. 어깨 통증을 느낄 정도로 치열하게 일하며 살아온 그는 요즘 정원을 가꾸며 사는 등 다소 여유를 찾았다. 그의 삶에 보람이 돼 준 딸을 생각하며 ‘마이 송(My Song)’이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앨범을 내려다 녹음 음원 자체가 분실된 2집 앨범 수록곡을 되살려내고 새로운 곡도 창작하는 등 제2의 음악 인생을 살고 있다. 포크 동아리 초정으로 부산 공연 “‘노래하는 방의경’을 잃어버린 시절이 많이 있었지만, 부산의 ‘바람새’라는 포크 동아리 분들이 저를 찾아줬어요. 그분들의 초청으로 지난 11일 부산에서 공연을 했는데 자신들은 공연 때는 한쪽 귀퉁이에서 공연하고, 가운데 자리는 제게 노래하는 순간을 위해 남겨뒀어요. 그분들의 환대는 단순한 감격의 수준을 넘어서요. 그 시절에는 가슴 아팠지만 ‘이 시간까지 살아온 보람이 있구나’라고 느껴요. 공연을 하면서 저도 울었고 관객도 울었어요. ‘시대의 아픔과 괴로움을 꿋꿋이 이겨내자’는 저의 마음이 다음 세대에까지 전달된 것 같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열심히 곡을 쓰는 일로 보답하려 합니다.” 방의경이 최신 곡으로 지난 18일 이화여대 공연에서 공개한 노래 ‘행복이 있다기에’는 성찰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저 바다 건너에 평화가 있다기에/ 이 몸은 고향을 떠나 찾아 왔지만/ 보이는 것은 수많은 모습들/ 서로 다른 말을 할 뿐/ 아마도 평화는 이 마음 안에 있었나봐’ 등의 가사로 자연과 우주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그의 노래에는 ‘한적한 강가’ ‘꽃길’ ‘들에 있는 나의 집’ 등 유독 자연을 노래한 대목이 많다. 방의경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종교인이었다”면서 “나무를 보고 누가 저 나무를 기를까, 어떻게 나무가 해를 거듭해 살아날까를 연구하면서 우주를 느꼈다”고 밝혔다. 나윤주(문화평론가·이화여대 노래패 한소리 전 회장) |